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 편액
  • 공간별 보기

팔우헌(八友軒)

예천 한양조씨 팔우헌종택(醴泉 漢陽趙氏 八友軒宗宅)

55.5x92.5x6.6 / 해서(楷書)MORE

의견달기 URL
목록 이전 기사 다음 기사
  • 자료명 팔우헌(八友軒)
  • 글자체 해서(楷書)
  • 크기 55.5x92.5x6.6
  • 건물명 팔우헌(八友軒)
  • 공간명 예천 한양조씨 팔우헌종택(醴泉 漢陽趙氏 八友軒宗宅)
  • 서예가
  • 위치정보 예천 감천면 돈산리
  •  
r0126_1.jpg
팔우헌(八友軒)

팔우헌(八友軒)


팔우헌(八友軒)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에 있는 팔우헌(八友軒) 조보양(趙普陽, 1709~1788)의 종택 별당 편액이다. ‘팔우’는 여덟 가지를 벗한다는 뜻인데, 조보양이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산[山]·물[水]·바람[風]·달[月]·소나무[松]·대나무[竹]·매화[梅]·국화[菊]를 벗 삼아 제자들을 기른 데서 비롯되었으며, 스스로 호를 팔우헌이라 하였다. 조보양은 여덟 벗에 대해 각각 6언(言)으로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산」
밀어도 가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는데
기상 깊고 온온하며 자태 높고 웅장하네
가을 날 단풍이나 봄철 꽃 가릴 것 없니
자연스러운 참 모습을 사랑할만 하구나


推不去呼不來
氣深穩態偃蹇
不關秋葉春花
可愛天然眞面


「물」
흘러가다보면 언젠가 바다에 이르려고
잔잔하게 밤낮으로 그침 없이 흐르네
여울 물 움켜다가 얼굴을 씻어보니
맑은 소리 다시금 귀에 가득해지네


去去何時到海
潺潺日夜不已
旣浥餘波濯面
更得淸音盈耳


「바람」
어디로 갔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때때로 추녀와 방안에 가득 불어오네
바람 불면 소나무 대밭을 가르더니만
바람 자면 거문고와 책장 조용해지더라


不知何去何來
有時盈軒滿室
來看松竹分披
去認琴書靜寂


「달」
하늘 아래 뉘 집인들 비추지 않으랴만
내 집을 가장 좋아해 밝게 비추어주네
백발이 분명히 난 것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명아주 걸상에 누워 책을 보네


天下誰家不照
最是得意吾廬
不怕白髮分明
獨臥藜牀看書


「소나무」
처음엔 털끝 같은 작은 싹이 돋아나더니
마침내 구름을 뚫고 하늘을 떠받치네
명당을 지탱하는 기둥 되지 않는다면
구름 학이 찾아와 머물 곳이 되리라


始從毫末微妙
終得拂雲干霄
若不支了明堂
便要雲鶴來巢


「대」
위수 가의 대숲은 바라지 않고
정원의 몇 그루라도 사랑스럽네
세모에도 그 빛깔 변하지 않아
백이숙제의 맑은 풍모 지니고 있네


不須渭上千畝
自愛園中數叢
歲暮不改顔色
留帶采薇淸風


「매화」
그윽한 집 가까이 너를 심었으니
어느 곳 풀인들 향기 품지 않으랴
해마다 한 차례 봄비가 내리면
처마 따라 거닐며 함께 웃자하네


栽汝故近幽軒
何所獨無芳草
年年一番春雨
要我巡簷共笑


「국화」
굴원의 저녁상 도연명의 술잔 속에 띄운 건
지취를 취한 것이지 먹으려는 것이 아니네
그러니 그저 입과 배를 채우려고 한다면
명아주 몇 가지와 콩 몇 이랑이나 심게나


屈餐英陶汎杯
取其趣非爲食
若使只爲口腹
合種數畝藜藿

편액의 글씨는 해서로 쓰였다.

우선 팔우(八友)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나아가면 공맹(孔孟)을 섬기고 물러나면 노장(老壯)을 좇던 옛 선비들의 삶에 대한 공통된 자세를 느끼게 한다. 편액의 뜻을 팔우(八友)라고 한 이상 글씨 또한 그 느낌에서 비켜갈 수 없다. 필획이 두툼하고 결체 구성이 탄탄하다. 필세의 맺고 펼침이 화면을 넓게 운용하고 있어 행간이 넓지만 비어 있지 않고 가득하다. 특히 ‘八’자의 우측 필세를 거두어 마무리 하고 ‘友’를 크게 쓰고 우측 파책을 힘차게 뻗어 그 아래 공간을 보완하였다. 좌측 삐침은 강하고 힘차게 가로질렀으나 필세는 거두어 위를 향하여 좌측의 ‘軒’자의 배치를 견인하였다. 軒자의 종획 두 개를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길게 처리하여 전체 공간의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서예가 恒白 박덕준)

예천 한양조씨 팔우헌종택(醴泉 漢陽趙氏 八友軒宗宅) 소개


팔우정이 있는 돈산리는 예천군의 동북쪽 끝으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와 마주하며 시·군 경계를 이룬다. 돈산리는 원래 안동부 감천현 지역이었는데, 1895년 지방관제 개정 때 예천군 감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돈답동, 산동, 유동 일부를 병합하여 돈산리라 하였다. 돈산리는 돈답, 산골 등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보양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천곡서당(泉谷書堂)이 위치한 곳은 산골마을이다. 산골[山谷]은 산동(山東)이라고도 불린다. 영조 때 조보양이 유동에서 고방산(高芳山)[주마산走馬山] 동쪽에 터를 잡아 임천(林泉)을 즐기던 곳이라 하였다. 입구에 있는 마을은 조보양의 문도(門徒)가 천곡서당을 창건했었다하여 독서동(讀書洞)이라 하였는데, 조선말에 마을 중간으로 옮겼다.

돈답(敦畓)은 돈닷, 돛단, 돈전(敦田)이라고도 불린다. 3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터를 잡은 마을로 10여 가구가 살며 마을 가운데의 지형이 낮아서 물이 고인 형국이다. 또 마을이 마치 돛단배의 형국이라고 하여 돛단이라 했다.

한양조씨(漢陽趙氏)는 고려 후기 첨의중찬을 지낸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한다. 대대로 관료를 배출하여 서울에서 가문이 번창하였는데, 중종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한양조씨 가문은 화를 입을까 우려해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때 조지수의 9세손 조종(趙琮)은 처가가 있던 영주로 이거하였다. 조보경은 조종의 8세손으로, 자가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 본관은 한양이고,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증조부 조명한(趙鳴漢)은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에게 수학하였고, 조부 조봉징(趙鳳徵)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에게 수학하였다. 부친은 조원익(趙元益)이고, 모친은 선성이씨(宣城李氏)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조보양은 소은(小隱) 이경익(李景翼), 나졸재(懶拙齋) 이산두(李山斗),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47년 39세에 생원·진사시에 입격하고, 1773년 65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보양은 5형제 가운데 4형제 조규양(趙葵陽, 1707~1776)·조보양·조의양(趙宜陽, 1719~1808)·조몽양(趙夢陽, 1722~1790)과 조규양의 아들 조석회(趙錫晦, 1727~1802)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조보양과 조석회는 또 문과에 급제하여 오련쌍계(五蓮雙桂)로 영남에 이름을 떨쳤다. 1773년 예조좌랑에 제수되었는데, 권신 정후겸(鄭厚謙)이 예조참판으로 있었다. 정후겸은 조보양이 기영례(祇迎禮 하관이 상관의 행차를 나가서 맞이하던 예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보양의 하인을 매질하였다. 이에 조보양은 “이 사람의 위세가 하늘을 불태우겠구나! 사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이와 같도다. 이것이 군자는 기미를 보는 때이다. 또 백발의 낭관이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에게 욕을 당했는데, 다시 몹시 구차하여 녹을 생각한다면 남에게 종처럼 굽실거리며 비굴하게 알랑거리는 부류가 될 뿐이다.”라고 분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후 1781년 병조 좌랑에 제수되었으나 6일 만에 낙향하고는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조보양은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는 한편 물·바람·달·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 이 여덟 가지를 묶어서 팔우(八友)라 부르며 자신의 당호로 삼았다. 조보양의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덕기(尹德基)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다. 저술로 7권 4책의 『팔우헌집八友軒集』이 있다.

팔우헌종택은 안채, 천고서당, 팔우헌의 3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동편에 천곡서당이 있다. 천곡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평면은 어간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전면에는 반 칸의 툇간을 두었고,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었다. 구조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 안채는 솟을대문과 대칭으로 있으면서 천곡서당의 서북쪽에 있다.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팔우헌은 1970년에 천곡서당의 동북쪽에 중건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참고문헌
  • 조보양, 『팔우헌집八友軒集』.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의 명현당호』, 안동민속박물관, 2000.
  • 예천문화원, 『예천누정록』, 예천문화원, 2010.
  • 황동권, 「팔우헌 조보양의 골동록 연구」, 대동한문학회 하계학술대회 발표요지집, 2013.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퇴계학자료총서해제』(제5차분) : 임노직 저, 『팔우헌집 해제』, 2004.
  •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목판아카이브(http://mokpan.ugyo.net/hyunpan/)